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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과 영화관이 한 곳에…팔방미인 문화시설 ‘무사이’ [별별 부산]⑩
2025.02.25
[무사이 독립영화관 독립서점]
북구 화명동 독립서점 겸 영화관
책 500권에 독립영화 상영까지
안락하고 사운드 훌륭한 상영관
책방 공간은 공연·전시장으로도
2021년 열어 사회적 기업 인증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되기를…”

“영화는 술 같은 것이고 책은 물 같은 것이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영화 감상과 독서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책은 우리를 좋은 의미에서 차갑게 만들고, 영화는 좋은 의미에서 뜨겁게 만든다”고 부연했다.
이 평론가 말대로 독서는 이성을 차갑게 식히고, 영화는 감성을 뜨겁게 달구는 효과가 있다. 그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공간이 부산 북구 화명동에 있다. 바로 ‘무사이 독립영화관 독립서점’이다.
‘무사이’는 그리스 신화 속 예술과 학문의 여신들을 일컫는 말로, ‘생각을 불러일으키다’는 뜻이다. 독립서적과 독립영화를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문화 커뮤니티 공간에 걸맞은 이름이다.
무사이는 입구만 얼핏 봤을 때는 서점과 영화관이 함께 있는 곳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가까이 접근해 입간판에 적혀 있는 ‘커피’ ‘동네극장’ ‘동네책방’ ‘모임/공연/전시’ 등 문구를 보고서야 제대로 찾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상영 시간표와 행사 일정을 알리는 녹색 게시판에선 레트로 감성이 돋보인다.


작은 철제 현관문은 여느 동네 카페 입구처럼 생겼는데, 실제로 문을 열고 지하로 들어가면 카페로 쓰이는 공간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반긴다. 커피와 음료는 물론 맥주와 와인 등 주류도 판매한다.
카페 안쪽에는 다양한 독립서적들이 전시된 책방이 있다. 웬만한 독립서점보다 넓고, 보유한 책도 500권에 달한다. <됐고요, 일단 나부터 행복해지겠습니다> <내가 제일 멍청해> <오늘도 거절을 못했습니다> 등 독립서적 특유의 톡톡 튀는 제목들이 눈길을 끈다. 일부 도서에는 주인장이 직접 쓴 추천사나 작가의 자필 메모가 붙어 있다.
무사이는 책과 영화 모두에 진심인 곳이다. 보통 독립서점의 책들은 에세이나 소설이 대부분인데, 무사이 책방의 책장에선 영화를 주제로 한 도서나 잡지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얼마 전 별세한 컬트 영화 거장 데이비드 린치 자서전과 평전도 신간 매대의 눈에 띄는 자리에 있다.



서점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소규모 극장이 있다. 중구 신창동의 ‘모퉁이극장’과 함께 부산에 딱 2곳 있는 독립영화관 중 하나인 ‘무사이극장’이다. 지난해 말 이곳에서 부산독립영화제가 열리기도 했다. 최대 수용 인원이 30명으로 극장치곤 협소한 편이지만, 편안한 1인 리클라이너 소파와 빈백 등을 갖추고 있어 안락함 점수는 오히려 대형 상영관보다 높다. 관람료도 멀티플렉스보다 저렴한 9000원이다.
상영 시간표를 보니 기존 상업 영화관과는 확연히 다르다. 지난 4일 기준으로 ‘벌집의 정령’ ‘멜랑콜리아’ ‘문워크’ ‘수호’ 등 생소한 독립·예술영화들이 가득하다. 기자는 ‘멜랑콜리아’를 잠시 감상했다. 스크린 크기가 압도적이진 않지만, TV와는 비교 불가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오디오 마니아에겐 익숙할 ‘클립쉬’ 스피커가 구현하는 사운드도 일품이다. 영화 오프닝 시퀀스에 클래식 음악이 삽입됐는데, 고역의 선예도 표현은 살짝 아쉬웠지만 풍부하고 직관적인 저음이 주는 다이내믹한 맛이 좋았다. 총 7대의 스피커로 다채널 환경을 구축한 덕에 입체감과 공간감도 충분했다. 다만 일반 영화관과 달리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무다. 예매는 포털사이트나 전화를 통해 가능하다.


무사이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소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별도의 모임방에선 매달 영화와 독서를 주제로 한 모임이 각각 두 번씩 열리고 있다. 책방으로 쓰이는 공간에서도 북토크, 작가와의 만남은 물론 전시나 라이브 공연, 강연까지 열리니 그야말로 팔방미인 복합 문화 공간이다. 지난달 31일 열린 인디밴드 ‘전기뱀장어’의 공연은 예매 오픈 1분 만에 40석이 매진될 정도로 인기였다. 문화 생활에 목마른 부산 청년들이 서울을 무대로 활동하는 밴드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무사이의 영화관과 모임방, 책방은 모두 대관이 가능하다고 하니 특별한 이벤트 장소로도 고려할 만하다. 지난해 1월에는 이곳의 단골 손님인 한 작가가 문화기획자를 자처하며 전설적인 뮤지션인 데이비드 보위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이처럼 문화 행사를 기획하는 이들에게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무사이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프로그램이 다양해지면 참가자가 많아지고, 만족도 역시 높아질 테다.
문화복합공간 무사이는 최용석 운영총괄이사의 손에서 탄생했다. 약 10년 전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최 이사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협동조합 ‘작은책방 북적북적’을 차린 것이 계기가 됐다. 책에 더해 영화를 소통과 성찰의 매개체로 활용하길 바라던 차에 지금의 무사이 공간을 알게 됐고, 꿈을 미룰 수 없어 코로나19 시기였던 2021년 5월 개점했다.

최 이사는 자신처럼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달려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북토크나 관객과의 만남(GV), 공연 등 행사가 있을 때는 사람이 꽤 모이지만 평상시에는 영화를 좋아하는 젊은 단골손님 외에는 찾는 이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 아내인 성지영 대표이사, 직원인 손형선 총괄매니저와 함께 머리를 맞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올봄에는 비건 베이커리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고, 뮤지션들의 공연 문의도 이어지고 있어 협업이 기대된다.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 생활을 향유할 수 있게 한다는 공공성을 인정받아 지난해에는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기도 했다.
최 이사는 “무사이를 만든 취지는 ‘삶의 회복’이다. 여기를 찾는 이들이 문화 생활의 즐거움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회복하고, 자기를 자기답게 만들기를 바란다. 저의 자부심도 누군가의 삶을 회복시키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산 16개 구군마다 이런 문화 공간이 자리하는 것이 내 욕심이자 바람”이라며 “사실 이런 게 ‘15분 도시’에도 부합하는 일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