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해안 섬들을 잇는 다리들이 있는데 드라이브 코스로 환상적이라는 말을 지인에게 들었다. 요즘 남해안은 2026여수세계섬박람회를 비롯해 섬 이야기가 이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이 말한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는 ‘백리섬섬길’이다. 전남 여수시 돌산읍에서 고흥군 영남면을 잇는 약 100리(39.2km)의 해안길을 말한다. 무엇을 해도 좋을 가을 날씨 백리섬섬길로 달려갔다.
■섬과 섬을 잇는 소통의 다리, 그리고 섬 이야기
백리섬섬길은 전남 적금도·낭도·백야도·개도 등 10개 본섬을 11개 해상교량으로 잇는 프로젝트이다. 국비 1조 4260억 원이 투입되고, 현재 7개 다리가 완공됐다. 나머지 4개 교량이 2028년 완공되면 착공 24년 만에 거대한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것이다.
정부와 여수시, 고흥군 등 해당 지역들은 백리섬섬길이 남해안의 대표적인 해안 관광도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름이 재밌고 편안하다. 백리섬섬길은 백리가 되는 섬과 섬을 잇는 바닷길을 의미한다.

백리섬섬길의 출발은 여수와 고흥 어디에서도 가능하다. 고흥군에서 시작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최초의 저궤도 실용 위성 발사용 로켓인 누리호가 위성 14개를 싣고 우주로 향한 곳이 고흥군이기 때문이다.
백리섬섬길이 시작되는 고흥군 영남면엔 당시 누리호의 발사 과정을 볼 수 있는 대표적 명소인 ‘우주발사전망대’가 있다. 누리호 발사 장면의 감동을 느껴보기 위해 먼저 들렀다. 전망대 모습이 영판 발사대 모습이다. 발사대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우주로켓 발사 장면의 대표적 명소 우주발사전망대는 나로우주센터와 직선거리 17㎞에 있다. 지상 7층, 높이 52.15m 규모다. 층별로 7층 회전 전망대, 4∼6층 계단 전망대, 3층 옥외 전망대, 2층 우주 도서관으로 구성돼 있다. 누리호 발사 당시 수백 명의 인파가 이 곳에 몰렸지만, 발사대 내부에는 200명에게만 출입이 허용됐다. 다른 사람들은 전망대 인근의 미르 전망대와 용바위 전망대에서 발사 과정을 지켜봤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가장 높은 7층 회전 전망대에 오르니 고흥과 여수 등 남해안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7층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1시간에 1바퀴씩 테이블이 회전한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360도 전체를 볼 수 있는 셈이다. 섬들을 끼고 있는 망망대해가 마치 우주 같다. 지난 7일 이곳에서 발사한 누리호의 위용과 감동이 새삼 느껴진다.

전망대를 뒤로 하고 백리섬섬길의 시작인 팔영대교로 향했다. 대교까지 가는 길에 바다와 섬들이 오른편에서 함께 했다. 바다와 섬의 에스코트를 받고 가는 해안길이 흥겹다. 신나는 음악이 절로 땡긴다.
우주발사전망대에서 차량으로 10여 분 달렸을까. 백리섬섬길의 출발지점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이고, 곧바로 팔영대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팔영대교는 고흥군 영남면과 여수 화정면 적금도를 연결하는 길이 1340m의 현수교다. 77번 국도 백리섬섬길 구간 중 유일하게 고흥군과 직접 연결되는 다리로 2016년 개통됐다. 주탑의 높이가 138m나 돼 멀리서도 다리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우주발사전망대에서 본 다리가 바로 팔영대교였다.
현수교는 언제봐도 멋있고 화려하다. 주탑과 주탑을 잇는 늘어진 케이블의 곡선미가 다도해 수려한 풍경과 너무 잘 어울린다. 특히 다리 한 켠에 도보로 다리를 건널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무엇보다 좋았다. 우아한 다리 위에서 본 다도해의 모습은 발사전망대에서 본 ‘우주’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다=우주. 바다뿐이겠는가. 나를 포함해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우주다.

팔영대교는 고흥군의 효자 다리란다. 올 상반기에만 총 56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이 지역 1위 관광지다. 다도해의 수려한 경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 받고 있다. 이곳은 인근 남열해돋이해수욕장, 우주발사전망대, ‘치유의 섬’으로 탈바꿈한 소록도 등과 연계해 큰 시너지를 내고 있다.
백리섬섬길의 다리 중 맏형 격인 팔영대교를 지나면 다리 위 붉은 빛이 감도는 아치 형상이 나타난다. 여수시 화정면 적금도와 낭도를 연결하는 적금대교이다. 길이 470m의 아치교 중간에 건설된 붉은 빛의 아치 형상이 마치 태양 같다. 무엇보다 적금대교는 개방감이 뛰어나다. 이 다리는 아치교 특유의 구조로 주행 중에도 여자만과 고흥 반도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같은 풍경 덕분에 차량 속도를 줄여 천천히 주행했는데도 뒤따르던 차량들의 ‘원성’은 없다. 다리 이름인 적금(積金)은 섬 이름에서 따왔다. ‘금이 쌓여 있는 섬’이라는 뜻으로 이 다리를 건너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관광객들 사이에서 전해진다.

■세상 모든 다리, 아름다운 인연이 있는 다리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무심히 달리니 또 다른 다리 낭도대교에 올랐다. 낭도와 둔병도를 잇는 낭도대교는 다른 교랑들처럼 높은 주탑이 없어 심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시야를 가리는 구조물이 없다 보니 탁 트인 다도해의 풍경을 보긴 그만이다. 시간이 되신다면 낭도에 들렀다 가는 것도 추천한다. 낭도(狼島)는 섬의 모양이 웅크린 여우를 닮아 그렇게 불려지고 있다. 높지 않은 산이 해안을 따라 조성된 탐방로가 있어 산책 즐기기에 그만이다. 백사장을 거닐다 듣는 파도 소리는 늘 새롭다. 같은 것 같아도 다르다. 밀려왔다 나가는 파도는 마치 들숨과 날숨 같다. 금방 편안하다.
낭도는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낭도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낭도에서만 453점의 발자국이 확인됐고, 인근의 사도·목도·적금도·추도 등 낭도리 전역에서는 총 2640점에 달하는 공룡발자국이 발견돼 국내 손꼽히는 규모의 공룡 화석지로 평가받는다.


낭도를 나와 다시 달렸다. 멀리서 V자형 주탑이 눈에 들어온다. 둔병대교다. 이 다리는 여수시 화정면 둔병도와 화양면 조발도를 연결하는 길이 990m의 사장교다. 백리섬섬길의 핵심 구간으로, 특히 V자형 주탑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곡선미와 주변 다도해의 풍경이 어우러져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가 높다. 교량 측면에 보행자 도로가 확보돼 있다. 걸어서 다리를 건너며 여자만 등 다도해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좋다. 다리를 지나면 조발도에 들어갈 수 있다. 조발도는 인근 섬들 중에 아침 햇살을 가장 먼저 받는 위치에 있다고 해 이름 붙여졌다. ‘첫빛의 섬’이라고 불린다. 이곳에 있는 조발도전망대에 오르면 이제껏 지나온 섬들의 다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조발도를 나서면 이번 여행의 마지막 다리인 화양조발대교를 만날 수 있다. 다이아몬드형 2개의 주탑과 곧게 뻗은 케이블이 남성미를 느끼게 한다. 주탑의 높이만 170m, 다리 길이는 854m나 된다. 이 다리는 특이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인연이 있는 다리’. 미래의 길을 열어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간다는 의미가 이 다리에 담겼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선 마지막 다리였지만, 화양조발대교는 여수시에서 고흥군으로 가는 백리섬섬길의 첫번째 다리이기도 하다. 화양조발대교를 시작으로 백리섬섬길을 되짚어 가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섬은 고립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섬과 섬을 이어주는 다리는 섬을 고립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 세상 모든 다리가 ‘아름다운 인연이 있는 다리’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