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펜루트, 환경·관광 두 마리 토끼 잡다
다테야마는 후지산, 하쿠산과 함께 일본 3대 영산 중 하나로 꼽힌다. 한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아 신성한 영역으로 여겨진다. 구로베는 구로베댐과 협곡, 그리고 나가노현 쪽으로 이어지는 구로베강 일대의 지명이다.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는 다테야마에서 출발해 구로베 지역을 거쳐 횡단하는 알프스 풍의 산악 관광 길이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일정상 나가노현 쪽의 오기자와역에서 도야마현의 다테야마역 방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날 알펜루트 여행은 4개 구간에 걸쳐 4가지 교통수단을 차례로 이용했던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전체 구간 통합 패스를 사서 구간마다 제시하면 됐다. 여행자의 짐은 물론이고 차까지 반대쪽 목적지로 대리운전해 주는 서비스도 있으니 어느 방면에서 출발해도 무방하다.

전기버스를 타고 첫 번째 경유지 구로베댐에 도착했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186m의 구로베댐은 초당 10톤 이상을 방류해 전기를 생산한다. 구로베댐 건설에는 연인원 1000만 명이 들었다고 한다. 그 규모는 제방을 직접 걷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느껴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날 구로베댐은 물보라로 보기 드물다는 쌍무지개를 만들어 우리를 환영해 줬다. 구로베댐역 입구에서 위령비 안내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구로베댐 공사 중에 무려 171명의 인부가 사망했단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구로베 제3발전소 건설에 1000명의 조선인 노동자도 강제 동원되었다. 구로베 호수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얼마나 많이 묻혀 있을까.

구로베 다이라까지는 지하로 운행되는 케이블카를 탔다. 구로베 다이라는 구로베 평원이라는 이름처럼 잘 꾸며진 정원 같았다. 눈 아래로 펼쳐지는 에메랄드빛 구로베 호수를 바라보며 잠시 쉬어가기 좋았다. 구로베 다이라에서 다테야마의 최고 봉우리 다이칸보까지는 로프웨이(공중 케이블카)를 탔다. 중간에 철탑을 세우지 않고 정류장 사이를 한 번에 잇는 일본에서 가장 긴 구간이다.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대자연의 절경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으니 과연 ‘움직이는 전망대’라는 별명다웠다. 다이칸보에서 보이는 5개의 봉우리 ‘아소5악’은 석가모니가 누워있는 것 같다고 해서 열반상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해발 2450m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무로도역이다. 다테야마 주봉 아래를 뚫은 터널을 통해 전기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무로도역 근처는 4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눈의 대계곡’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최대 높이가 15~20m에 달하는 거대한 설벽은 알펜루트의 상징이 되었다. 꼭 설벽을 보겠다는 생각만 버리면 지금이 여행하기에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한여름 다테야마에는 눈의 흔적이 희끗희끗하게 남아 있다. 선선한 날씨 속 무로도 고원 일대는 트레킹하기에 최고였다. 화구호인 미쿠리가이케 수면에 다테야마의 높은 봉우리들이 비친 모습이 그림 같다. 이곳을 알프스라고 부르는 이유가 다 있었다. 산책길에서 말로만 듣던 일본의 천연기념물 ‘라이초(雷鳥)’를 운 좋게 만났다. 빙하기 때 일본에 들어왔다가 기온이 올라가자, 여태 고산지대에서 살아가는 특별한 존재다.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가 난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계곡에서 유황 연기가 솟아오르는 모습이었다. 미쿠리가이케를 따라 걷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미쿠리가이케 온천도 만났다. 겨울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몸을 담갔을 것이다.
이제 내려가는 길이다. 무로도에서 원시림 지대 비조다이라까지는 구불구불한 산악 도로를 따라 고원 버스를 탔다. 이 버스의 대형 창문은 수령 1000년이 넘는다는 다테야마 삼나무와 너도밤나무 원생림을 감상하기에 좋았다. 알펜루트 도야마현 쪽의 종점인 다테야마역까지 마지막 구간은 케이블카를 타고 가파른 경사를 내려갔다.
대체 관광지 교통수단을 왜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운영하는지 궁금해졌다. 짐작대로 환경 보호 목적이 가장 컸다. 알펜루트는 처음부터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 일반 차량의 통행을 전면 금지했다. 대신 친환경 전용 교통수단으로 갈아타서 이동하도록 설계했다. 국립공원 생태계 보호와 관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그들의 세심함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협곡 공사 열차, 관광열차로 변신
도야마현의 현청 소재지 도야마시(富山市)는 한자음으로 읽으면 우리와 같은 ‘부산시’여서 묘한 친근감이 들었다. 다음 날에는 도야마현의 구로베 협곡에 가기로 했다. 일본에서 가장 깊고 웅장한 V자형 협곡이었다. 다테야마 연봉(連峯)과 우시로다테야마 연봉 사이를 흐르는 구로베강이 오랜 시간 동안 바위를 깎아 만들어낸 대자연의 대단원 같은 곳이라고 했다. 20세기 초까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일본 비경 100선 중 하나로 선정된 적도 있다.

이 험한 골짜기에 관광열차가 달린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구로베댐 건설과 수력 발전용 자재와 인력 수송을 위한 화물용 소형 열차가 발단이었다. 공사가 마무리되자 이 험준한 협곡을 통과하는 철도가 가진 독보적인 풍광과 희소성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53년부터 ‘구로베 협곡 도롯코 열차’가 관광철도로 운행을 시작했다. 우리도 예전에 트럭을 일본어의 영향으로 ‘도라꾸’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름이 낯설지 않다.
도롯코 열차는 우나즈키역에서 출발해 40여 개의 터널과 20여 개의 다리를 지나 20km 구간을 달린다.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 겨울에는 눈 덮인 산의 모습이 일품이라고 한다. 아직은 더운 여름철인데 객차에 냉방 설비가 없어 아쉬웠다. 이달 말까지는 노토반도 지진 영향으로 네코마타역에서 회차 운행하고 있다.

도야마현에서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블랙 라멘이다. 진한 간장 소스가 들어가 새까만 국물이 특징이다. 블랙 라멘은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염분을 보충해 주기 위해 짭짤하게 만든 중화소바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맛이 짭조름하면서도 굵게 갈아 넣은 흑후추가 칼칼한 매운맛을 낸다. ‘도쿄 라멘쇼’에서 3년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일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음식 중 하나다.
■동화 같은 시라카와고 합장촌
마지막 목적지는 기후현의 고즈넉한 산촌인 시라카와고다. 기후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 명소인데, 돌아오기로 예정한 나고야 공항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은 세모난 지붕이 두 손을 합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합장촌’이라고 불린다. ‘개구쟁이 스머프’에 나오는 마을 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시라카와고의 집들은 나무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지붕은 억새를 엮은 다음 조롱박나무 줄기로 묶어 고정시켰다. 눈이 너무 많이 오는 지역이어서 눈이 쌓이는 걸 막기 위해 지붕이 60도의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못을 전혀 쓰지 않고 보와 기둥이 서로 홈에 꼭 맞도록 기가 막히게 조립했다. 그중 관광객에게 개방된 한 집에 들어가 봤다. 이곳에서 양잠과 함께 화약의 원료인 초석을 생산했다는 사실이 특이했다. 알고 보니 누에똥 성분이 화약 원료가 된다. 1층 바닥 아래에 깊은 구덩이를 파고, 풀·나뭇잎·누에 배설물 등을 섞은 토양에 재와 오줌 등을 뿌려 미생물 발효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초석을 추출했다. 지붕 아래 넓은 다락방에서는 양잠을 하고, 1층 아래 바닥 공간에서는 초석을 만드는 가내수공업 형태였다. 이 지역 패권자 마에다 가문이 몰래 초석을 생산할 장소로 찾은 곳이 깊은 산골 시라카와고 합장촌이었다. 눈이 쌓인 시라카와고 합장촌은 마치 동화의 한 장면일 것 같았다. 자연을 보호하면서도, 자연을 활용할 방법을 잘 찾은 일본을 돌아본 여행이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