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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강 따라 절벽 잔도, 11월엔 황금빛 은행나무 금시당

푸른 강을 따라 산길을 걷는 트레킹을 다녀왔다. 꽃밭에서 시작해 소나무 숲을 지나 절벽에 매달린 아찔한 잔도를 걷고, 500년 된 고택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강을 따라 돌아오는 아름다운 코스였다. 가을이 무르익는 경남 밀양시 ‘용두산생태공원 힐링 산책길’ 5km 코스가 바로 그곳이다.

한 산책객이 경남 밀양시 용두산 잔도에서 아래로 흐르는 밀양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남태우 기자
한 산책객이 경남 밀양시 용두산 잔도에서 아래로 흐르는 밀양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남태우 기자


■삼문송림과 구절초

삼문동공설운동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것으로 여행은 시작된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학교 대항 체육대회를 지켜보며 목청껏 ‘마음 약해서’를 외치며 응원전을 펼쳤던 추억을 떠올리며 운동장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걷는다. 50년 전에도 울창해 걷기에 좋았던 솔숲은 지금도 하늘을 뒤덮어 가을 나들이를 나온 많은 산책객을 따가운 햇살에서 보호해준다.

경남 밀양시 삼문공설운동장 숲을 가득 메운 구절초. 남태우 기자
경남 밀양시 삼문공설운동장 숲을 가득 메운 구절초. 남태우 기자


밀양강 제방 아래 하얀 눈꽃이 쌓인 듯 화사한 화원이 펼쳐진다. 많은 사람이 즐겁게 웃으며 카메라는 물론 휴대폰 버튼을 찰칵거린다. 화원 입구에 ‘구절초’라는 팻말이 붙었다. 국화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향기가 완전히 다른 꽃이다. 여행 초입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환한 꽃을 마음껏 구경하게 되다니 이번 일정도 행운에 행운이 겹칠 모양이다.

제방을 넘어가면 밀양 산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삼문송림이 나타난다. 2002년 ‘제3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차지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수령 100년을 넘은 곰솔 6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한 가족이 경남 밀양시 삼문송림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남태우 기자
한 가족이 경남 밀양시 삼문송림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남태우 기자


밀양강을 따라 삼문송림을 걷는다. 소나무 사이에는 빽빽하게 심어진 푸른 식물이 보인다. 매년 9월 보라색 꽃이 활짝 피면 가슴이 쿵쿵 뛸 정도로 아름다운 맥문동이다.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부는데 이제는 가을이어서인지 시원한 걸 넘어 차갑게 느껴진다. 송림 사이를 걷는 사람도 적지 않고, 강 쪽을 향해 놓인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강물만 바라보며 ‘멍 때리기’에 몰입한 사람도 보인다.

삼문송림이 끝나는 부분은 여름에는 시원한 물놀이장으로 이용되는 곳이다. 이곳에는 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낮은 콘크리트다리가 놓였다. 이 다리를 건너면 비로소 절벽에 매달린 잔도로 갈 수 있게 된다.

한 부부가 용두산 잔도로 이어지는 경남 밀양시 밀양강 콘크리트다리를 건너고 있다. 남태우 기자
한 부부가 용두산 잔도로 이어지는 경남 밀양시 밀양강 콘크리트다리를 건너고 있다. 남태우 기자


■밀양강 잔도

다리를 건너 맞은편 용두산 산자락을 따라 돌아서면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수변산책로, 즉 잔도가 나타난다. 지난 7월에 개통한 곳이니 그야말로 ‘신상’이다. 경치가 아름답고 시원한 데다 사진 찍기에도 좋아 많은 사람이 찾는 인기 명소로 자리를 잡은 장소다.

잔도는 구간에 따라 용두산 10~20m 절벽에 매달렸다. 절벽 아래로는 까마득한 밀양강이 흐른다. 이곳에는 용두보, 밀양 사람들은 용두목이라고 부르는 시설물이 있는데 옛날부터 여름철 물놀이장으로 인기가 높던 곳이다. 이곳의 물 흐름을 잘 모르는 객지 청년들이 해마다 한두 명씩 익사하는 사고가 일어나 지역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용두목에는 물놀이 가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다.

절벽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처럼 아찔해 보이는 경남 밀양시 용두산 잔도. 남태우 기자
절벽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처럼 아찔해 보이는 경남 밀양시 용두산 잔도. 남태우 기자


용두산 잔도 풍경은 듣던 대로 굉장했다. 푸른 숲으로 뒤덮인 용두산, 산 정상 부분에 자리 잡은 호젓한 절, 아래로는 절벽과 유유히 흐르는 강 그리고 절과 강 사이 절벽을 따라 이어진 아찔한 잔도.

개장 반년도 안 돼 SNS 핫플로 인기를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잔도가 조금 짧아서 5분이면 끝난다는 점이다. 그래도 경치가 워낙 좋다 보니 짧다는 아쉬움을 덮고도 남을 만큼 찾을 가치는 충분하다.

잔도를 한 번만 걷고 끝내기는 아쉬워 두세 번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한다. 잔도는 삼문공원 쪽에서 올라가는 것보다는 반대편, 즉 용궁사 쪽에서 내려오는 게 더 아름답다. 사진도 용궁사에서 삼문공원 방면으로 내려가면서 찍는 게 더 잘 나오고 풍경이 좋은 장소도 많다.

산책객들이 경남 밀양시 용두산 잔도에서 한한 표정으로 풍경을 즐기고 있다. 남태우 기자
산책객들이 경남 밀양시 용두산 잔도에서 한한 표정으로 풍경을 즐기고 있다. 남태우 기자


잔도가 끝나는 부분에서 여정을 끝내지 않고 나지막한 산길을 더 걸어가기로 한다. 깔끔하게 잘 정리된 산책로여서 걷기에 어려움은 전혀 없다. 흙길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구불구불한 데크길이 나타난다. 길을 걷다 뒤를 돌아보니 숲 사이로 멀리 밀양시 왼쪽 부분인 가곡동과 전사포리 전경이 나타난다.

경남 밀양시 용두산 잔도와 달팽이전망대를 연결하는 데크길. 남태우 기자
경남 밀양시 용두산 잔도와 달팽이전망대를 연결하는 데크길. 남태우 기자


데크길의 마지막은 해발 129m 용두산 꼭대기에 설치된 달팽이전망대다. 꽈배기처럼 꼬인 모양으로 올라가는 전망대 모양이 달팽이 같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번 산책길에서 눈을 가장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장소가 여기여서 용두산을 찾는 사람은 꼭 이 전망대에 오른다.

소문대로 달팽이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기가 막힌다. 밀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나왔지만 이렇게 훌륭한 전망을 가진 곳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경남 밀양시 용두산 달팽이전망대에서 바라본 잔도와 밀양 전경. 남태우 기자
경남 밀양시 용두산 달팽이전망대에서 바라본 잔도와 밀양 전경. 남태우 기자


달팽이전망대에서는 용두산 잔도와 밀양강, 그 너머 용평2교 다리와 경부선 철로 그리고 그 너머 밀양 시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정말 아름답고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하고 황홀한 전망이고 경치가 아닐 수 없다. 이곳에 온 사람들이 왜 하나같이 극찬을 쏟아내는지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다. 마침 공기가 맑아 먼 곳까지 아주 깨끗하고 선명하게 잘 보이니 풍경은 더 훌륭하게 느껴진다.

■금시당 은행나무

달팽이전망대에서 돌아가는 대부분 산책객과 이별하고 다시 산성산 일자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오른다. 일정 목표는 등산이 아니라 트레킹이어서 목적지는 물론 일자봉이 아니다.

산길이라고 해도 사실상 평지나 다름없는 산책로여서 걷는 데에는 큰 어려움은 없다. 분위기는 차분하고 공기는 맑은 길이어서 혼자서 또는 서너 명이 조용히 걷는 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한 산책객이 금시당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다. 남태우 기자
한 산책객이 금시당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다. 남태우 기자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이 나온다. 그곳에서 왼쪽 길을 따라 간다. 조금 더 걸으면 정자가 나오고 다시 두 갈래길이 나타난다. 이번에도 ‘금시당’이라는 안내판이 붙은 왼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고른다.

다소 험한 내리막길을 10분 정도 따라 가다 보니 역사가 깊은 고택이 나타난다. 16세기 사화를 겪고 권력과 정치에 환멸을 느낀 이광진이 관직을 내던지고 귀향해 만들어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별서인 금시당·백곡제다.

해마다 11월이 되면 수많은 관람객으로 붐비는 경남 밀양시 금시당과 500년 된 은행나무. 남태우 기자
해마다 11월이 되면 수많은 관람객으로 붐비는 경남 밀양시 금시당과 500년 된 은행나무. 남태우 기자


줄여서 단순히 금시당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특히 11월 늦가을에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유명한 곳이다.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집을 지을 때 함께 심었다는 수령 500년의 울창한 은행나무다. 가을이 되면 수만 장이나 되는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변해 온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아직 은행나무 잎은 노랗게 물들지 않았다. 여전히 한여름인 듯 파랗기만 하다. 환상적인 풍경이 연출되려면 다음 달 중순 이후까지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5km 산책 코스를 사진까지 찍으면서 걷다 보니 2시간이나 걸렸다. 금시당 앞 벤치에서 잠시 앉아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이광진이 이곳에 별서를 만든 이유는 강이다. 바로 앞으로 밀양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그 너머로는 너른 평야여서 경치가 좋기 때문이다. 벤치에 앉아 천천히 흐르는 밀양강을 내려다보니 이광진이 왜 여기를 택했는지 금세 수긍이 된다.

두 친구가 경남 밀양시 금시당에서 잔도로 돌아가는 아리랑길을 따라 걷고 있다. 남태우 기자
두 친구가 경남 밀양시 금시당에서 잔도로 돌아가는 아리랑길을 따라 걷고 있다. 남태우 기자


이제는 돌아갈 차례다. 귀환 코스는 아까와는 달리 산성산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옛 산책로 ‘아리랑길’이다. 올 때 길은 넓고 편했지만 가는 길은 좁고 다소 불편하다. 두 명이 동시에 걷기는 어렵고, 반대편에서 한 명이 오면 비켜줘야 한다. 하지만 윗길보다 더 조용하고 호젓해서 진짜 오솔길을 걷는 느낌을 느끼기에는 더 낫다.

돌아가는 길은 올 때 길보다 조금 짧다. 사진을 찍을 만한 감동적인 포토존도 없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이유도 없다. 그나마 인상적인 곳은 ‘무암(巫岩)’으로 불리는 ‘구단방우’다. 용두산에 신의 기운이 넘쳐 흐른다고 생각한 과거 무당들이 굿을 하며 치성을 드린 곳이다. 구단방우는 ‘굿을 한 바위’라는 표현이 사투리 발음 그대로 적힌 이름인 모양이다.

옛날 무당들이 굿을 했다는 구단방우. 남태우 기자
옛날 무당들이 굿을 했다는 구단방우. 남태우 기자


구단방우를 지나면 이번에는 용두보가 나타난다. 객지에서 물놀이하러 왔다 목숨을 잃은 많은 젊은이가 수장된 곳이다. 옛날 사람들은 물 아래에 귀신이나 신령이 있어 낯선 이들의 다리를 잡아끌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많은 곳이니 무서우면서 신령한 곳으로 여겨졌을수도 있다.

용두보를 지나면 다시 잔도가 나타난다. 산자락을 감싸 도는 길을 따라 걸어 삼문동공설운동장으로 향한다. 고향이지만 처음 걷는 길이다 보니 낯설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도 고향이니만큼 마음은 푸근했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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