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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스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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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용기에만 기대선 안 된다 [OTT 씹어먹기 오도독]

2025.04.11

'온리 더 브레이브' 스틸컷. 코리아스크린 제공
'온리 더 브레이브' 스틸컷. 코리아스크린 제공


“불길이 덮치면 화물 열차 100대 소리가 나고 바람은 허리케인처럼 몰아치며 열기는 500도가 넘게 오른다. 잘 들어, 얼굴은 차가운 땅에 묻고 숨만 쉬어라.” 팀장 에릭 마쉬(조시 브롤린 분)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무 명 남짓 대원들이 작업을 멈추고 방어막을 뒤집어쓴다. 산불 현장 최일선에서 확산 저지 임무를 맡은 핫샷팀. 이들은 무엇이든 집어삼킬 것만 같은 화마에 맞서 방어선을 치고 맞불을 놓는 최정예 소방관들이다.

'온리 더 브레이브' 스틸컷. 코리아스크린 제공
'온리 더 브레이브' 스틸컷. 코리아스크린 제공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는 이들 핫샷 대원의 사투를 그린 재난영화다. 우리나라에는 2018년 3월 스크린에 걸렸지만 5만 명의 관람객도 불러 모으지 못할 정도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2025년 봄, 웨이브·왓챠 등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스트리밍을 통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더 이상 남의 나라 재난영화 중 하나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국 곳곳, 특히 영남권에서 실제로 발생한 ‘실화’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온리 더 브레이브’가 사실적으로 와 닿는 건 단지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 역시 2013년 미국 애리조나주 프레스콧의 야넬힐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에 맞선 이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건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온리 더 브레이브' 스틸컷. 코리아스크린 제공
'온리 더 브레이브' 스틸컷. 코리아스크린 제공


그래서인지 인트로부터 강렬하다. 검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작은 불티들이 하나둘 날린다. 불티가 조금씩 많아진다 싶더니 아래에선 심상찮은 소리가 들린다. 점점 커지는 소리를 좇아 카메라가 서서히 아래로 향한다. 시선도 따라간다. 모니터엔 어느새 숲을 집어삼키고 있는 거대한 불덩이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도입부지만, 사실 이 영화의 간단치 않은 메시지와 결말을 미리 보여주는 장치이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불티는 마치 반딧불이 무리가 유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잠시나마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 하지만 아래는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이때까지 우리가 생각했거나 대비했던 재난이 그저 밤하늘에 피어오르는 불티 정도로 가벼웠던 건 아닌지 묻고 있다.

'온리 더 브레이브' 스틸컷. 코리아스크린 제공
'온리 더 브레이브' 스틸컷. 코리아스크린 제공


재난영화엔 으레 영웅이 등장한다. 곧 닥칠 재앙을 경고하지만, 무능하거나 무관심한 당국은 무시하기 일쑤다. 영웅은 기어이 난관을 이겨내고 지역 사회, 심지어 인류를 구한다. 영웅은 이 과정에서 일반인들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희생정신을 발휘한다. 살아남은 이들이 그의 희생을 기리는 장면까지 보고 나면 엔딩 크레딧이 흐른다. 마치 답이 정해진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오답’을 작정하지 않는 이상 어긋나지 않는 공식이다. 영웅 만들기에 진심인 할리우드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온리 더 브레이브' 포스터. 코리아스크린 제공
'온리 더 브레이브' 포스터. 코리아스크린 제공


그런데 ‘온리 더 브레이브’는 오답을 작정한 모양이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핫샷 팀장 마쉬조차 그저 사명감이 투철한 베테랑 소방관일 뿐 영웅은 아니다. 또 다른 주연인 신참 브렌든 맥도너(마일스 텔러 분)은 오히려 뒤늦게 개과천선한 말썽꾼 청년이지 그 역시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영웅도 없고 아름다운 결말도 없는 ‘온리 더 브레이브’는 다만 우리가 잊고 있는 재난의 냉엄한 현실을 가슴 아프게 보여줄 뿐이다. 19명의 핫샷 대원이 순직한 야넬힐 산불은 미국에서 9·11 테러 이후 가장 많은 소방관이 희생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화마가 들이닥치는 현장에서 퇴로를 놓친 소방관들은 그저 방염천으로 만든 방어막을 덮어쓴 채 숨져갔다. 지구 밖으로 사람을 실어 나르는 시대, 오직 그들의 용기에만 기대는 방식은 끝나야 하지 않을까. 작은 불씨 하나가 얼마나 큰 희생을 요구하는지 크나큰 대가를 치르고 배운 것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전 국민에게 관람을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2025년 봄, 대한민국 영웅들의 쾌유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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