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스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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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새로운 챕터를 시작한 브리짓
2025.04.11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스틸컷.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이유는 하나다.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영화에선 그토록 달콤하고 쉬운 연애가 현실에선 여간 어렵기에 우리는 영화를 보며 꿈꾼다. 그 사랑이 나에게도 찾아오기를 그리고 영화 속 사랑이 그 속에서나마 영원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 앞에서 좌충우돌하다 결국은 해피엔딩을 맞는 전형적인 로맨틱 영화의 구조를 따른다. 그런데 ‘브리짓’은 기존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들과 다르다. 사랑에 성공하고 막이 내린 줄 알았는데, 그런 영원한 사랑은 없단다.
브리짓은 완벽한 남성과의 연애를 꿈꾸지만, 마냥 동화 속 왕자님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다. 사랑을 찾아 헤매고, 썸을 타는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선언했다가 매번 실패하며 나이에 맞지 않게 덜렁거리고 자주 실수한다. 푼수같이 구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 이야기 같고 어느 땐 우리 옆집 언니같이 친숙해서 사랑스럽다.
완벽하게 행복한 이야기로 끝을 맺은 줄 알았던 브리짓이 돌아왔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로부터 무려 24년이 흘렀고, 전작(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으로부터 9년이 지났다. 브리짓을 연기한 르네 젤위거도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만큼 후속작 소식은 놀랍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는 여전히 현실 속에 살아 숨 쉬는 브리짓의 이야기를 그린다. 1편에서 3편까지 브리짓은 마크 다아시(콜린 퍼스)와 싸우고, 헤어지고 사랑하기 바빴기에 이번 작품에서는 그와 결혼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브리짓은 ‘혼자’ 남겨졌다.
남편 마크를 불의의 사고로 잃고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브리짓은 여전한 듯 보이지만 어쩐지 낯선 얼굴이다. 과거 잠옷 바람으로 노래하던 그녀는, 이제 잠옷 바람으로 두 아이의 아침을 챙기고 등굣길을 마중한다. 아이들의 엄마로 충만한 삶을 사는 듯 보이지만 그녀는 외롭다. 남편이 떠난 지 4년이 지났지만, 남편이 보고 싶다거나 외롭다는 말을 차마 꺼낼 수 없다. 그녀에게는 보살펴야 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무렇지 않은 척, 그리움과 외로움을 꾹꾹 눌러 담아도 그 상실감은 지워지지 않는다.
브리짓은 나름 아이들을 위해 애쓴다고 하지만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머리는 헝클어진 채 잠옷 바람으로 동네를 헤집고 다니는 브리짓은 자신마저 놓아버린 듯 보인다. 바로 그때 그녀 앞에 두 남자가 나타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는 역시 ‘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이번에도 브리짓은 연하남과 과학 교사와의 관계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 앞으로 나아간다. 그 와중에 브리짓의 푼수 끼는 여전하다. 젊어 보이려 입술에 필러를 맞았다가 부작용으로 웃음을 주거나, 데이트 중에 실수를 연발하는 모습은 나이가 들어도 역시 브리짓이다.
더불어 이번 시리즈에는 깊이를 더한다. 남편을 잊지 못하는 브리짓과 아직 아빠를 잊고 싶지 않은 아이들의 에피소드는 영화의 연륜을 느낄 수 있다. 어찌 보면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마크에게 편지를 쓰는 브리짓이나 아빠의 생일을 맞아 풍선에 카드를 날려 보내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이기에 가능한 감동이다.
우리는 브리짓의 연애와 이별, 결혼과 출산을 지켜보았다. 브리짓의 나이 듦과 아픔을 느꼈기에 자연스레 공감할 수 있는 슬픔이고 감동이다. 이는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마크를 잊지 못하는 관객들 또한 그를 추억할 수 있게 만든다. ‘마크’의 존재를 지우지 않고 영화 내내 느낄 수 있게 한 연출은 섬세하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챕터에 접어든 브리짓의 이야기가 지금 여기에서 멈추질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