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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스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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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때론 찌질한 외계인 [OTT 씹어먹기 ‘오도독’]

2025.03.28

일본 드라마 ‘핫스팟’ 스틸컷. NTV SNS 캡처
일본 드라마 ‘핫스팟’ 스틸컷. NTV SNS 캡처


만약 직장동료나 친구 등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이 외계인이라면? 실제로 이런 일이 후지산이 눈앞에 펼쳐진 일본의 한 소도시에서 벌어진다.

비즈니스호텔 프런트 직원인 키요미(이치카와 미카코)는 자전거를 타고 퇴근 중 트럭과 부딪힐 위기에 처한다. 그 순간 갑자기 나타난 미지의 힘으로 키요미는 자전거와 함께 공중 부양하듯 들려 큰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나타나 키요미를 구한 이는 같은 호텔 프런트에서 일하는 타카하시(가쿠타 아키히로) 선배.

타카하시는 다음 날 호텔에서 마주친 키요미에게 자신이 외계인이라 가능한 일이었다며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다. 타카하시는 손가락으로 동전을 접는 걸 보여주며 자신이 외계인 아버지와 지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외계인’이라고 실토한다.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중인 10부작 ‘핫스팟’은 기존의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른 접근 방식을 채택한 외계인 드라마다. 기존 외계물은 통상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 모습의 괴생명체가 유에프오(UFO)를 타고 지구를 침공(혹은 탐험)하거나, 반대로 미국 영화 ‘슈퍼맨’처럼 준수한 외모의 청년이 초능력을 발휘해 지구 멸망을 온몸으로 막는 서사가 주를 이뤘다.

그런데 웬걸, 타카하시는 몇 번을 마주쳐도 기억 못 할 정도로 평범하게 생긴 중년 아저씨(키요미의 친구는 ‘일본 남자 5000명은 비슷하게 생겼을 것’이라고 말한다)의 몸으로 등장한다. 외모만이 아니다. 직장에서는 다소 귀찮거나 머리를 써야 하는 업무를 동료에게 슬쩍 미루고, 동료가 칭찬받을 성과에 편승하고도 굳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약간은 이기적으로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짠할 정도로 소시민적이기도 한 그. 한마디로 너무나 인간적인 외계인인 셈이다. 타카하시의 인간적인 면은 외계인 능력을 발휘할 때마다 고열이나 가려움 등 후유증에 시달려 며칠을 몸져눕기까지 한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하지만, 남모를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게 무릇 인간 세계 아니던가. 타카하시의 기대와 달리 키요미는 종종 만나던 학창 시절 친구와 후배에게 그의 존재를 알리고, 타카하시는 처음 알게 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증명하느라 애를 먹는다.

동전 접는 걸로 끝났으면 그나마 다행. 학교 체육관 천장 구조물에 낀 배구공 꺼내기부터 배수구에 바퀴가 빠진 자동차 들어올리기 등 지켜지지 않을 비밀 준수를 대가로 치러야 할 대가는 늘어나기만 한다. ‘외계인 출몰 주의’라는 부제가 붙은 드라마지만, 실상은 ‘외계인의 인간극장’이 더 어울릴 듯하다.

'핫스팟'은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무심코 드러내는 일본 드라마의 특성을 잘 지니고 있다. 잘만 구슬리면 무슨 일이든 해내는 중년을 일꾼 부리듯 이용하는 키요미 일당의 실익 챙기기가 약빠르지만 크게 밉지 않다. 호텔리어나 중년 여성들의 소소한 일상을 엿들을 수 있는 만담 같은 대화도 드라마의 양념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한다.

니혼TV가 제작한 10부작 드라마로, 한국에서는 7화까지 공개됐다. N차 인생을 다룬 ‘브러쉬 업 라이프’ 작가 바카리즈무가 각본을 맡았다. 7화 끝자락에 호텔 장기 투숙객인 무라카미 씨가 미래에서 왔다고 실토한다. 마지막 3회를 남겨 둔 ‘핫스팟’은 외계인 이야기로만 끝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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